어쩔 수 없이 마주친 장소에서 그가 행복한 표…

어쩔 수 없이 마주친 장소에서 그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본 0은 화가 났다고 했다 정말 현실적인 이별은 10년의 시간도 무의미했구나 절규하듯 느낀 날 눈물도 나지 않고 계속 멍하다는 0의 앞에서 10년은커녕 1년도 채 못 가던 짧다면 짧은 사랑을 이어가던 우리는 운동을 해라 스트레스를 풀어라 따위의 쓸데없는 충고로 여러 개의 무의미한 방법들만을 늘어놓다가 0의 울먹임 반 한숨 반 앞에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 중 절반은 똑같은 감기로 고생하고 있던 그 해 겨울 0의 감기는 다음 해 봄이 찾아올 때까지 떡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예방주사를 놓는다는 개념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배운 생물학적 지식을 더듬어보면 감기에 대한 기억세포를 만드는 과정이다 미리 내 몸에 약한 감기를 심어놓으면 강한 감기가 와도 내 몸은 감기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 그것을 막아낸다는 것 그러나 0은 예상하고 있던 감기에 예방주사를 놓았음에도 감기를 막지 못했고 끙끙 앓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렇게 0은 모든 것 정말 모든 것을 상자 안에 담아내고 어쩔 수 없이 담담해져야 하는 계절이 다가올 때쯤에야 감기를 떨쳐낼 수 있었고 거짓말처럼 쌩쌩해진 몸으로 그 누구보다 태연하게 돌아왔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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